- 저자: 소현숙
- 제목: 경계에 선 고아들 - 고아문제를 통해 본 일제시기 사회사업
- 게재지: 『사회와 역사(구 한국사회사학회논문집)』 Vol.73: 107-141
- 발행연도: 2007
- 발행기관: 한국사회사학회
■ 초록 이 글은 일제시기 고아들에 대한 사회적 담론과 실천의 양상을 분석함으로써, 식민지 시기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배제의 매커니즘으로서 사회사업의 특성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일제시기 고아구제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단순히 인권적인 차원뿐만 아니라, 위생ㆍ도시미화ㆍ범죄예방 등의 차원에서도 제기되었다. 고아를 ‘불쌍한 동포’로 보는 시선은 ‘부랑아’ ‘불량아동’에 대한 혐오ㆍ공포의 시선과 겹쳐 있었다. 지역 밖으로의 축출이라는 임시적 대응방식으로부터 벗어나 고아들은 고아원의 설립을 통해 시설로 점차 수용되어 갔다. 한편 불량아동에 대한 감화체계의 발달과 더불어, 부랑고아들은 감화원의 주요 수용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고아원과 감화원은 사회주변부 아동에 대한 교육과 노동을 통한 사회적 재활 내지 사회적 정상화를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고아원이 양육을 통한 사회주변인의 보호 기능을 담당하였고, 감화원은 성인범죄자에 비해 다소 온건한 방식으로 아동범죄자를 처벌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담당했던 점에서 양자는 구분된다. 고아원 수의 양적인 부족과 고아원들이 갖고 있던 질적인 미흡함으로 인해 식민지 조선의 고아들은 거리의 ‘부랑아’와 ‘불량아’로 내몰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고아들은 ‘불량성의 정도’에 대한 수용주체의 자의적 판단에 따라 고아/부랑아/불량아로 배치되는 모호한 위치에 놓여있었다. 민간에 대한 절대적 의존상태를 벗어나 식민지 국가가 ‘부랑아 척결’을 표방하고 적극적 개입의 자세로 나선 계기는 일제 말기 전쟁에 따른 인적자원의 확보의 필요 때문이었다. ‘어제의 부랑아’를 ‘오늘의 생산전의 첨병’으로 거듭나게 한다는 일제측의 정책속에서 국민과 비국민(非國民) 사이의 경계에 놓여 있던 고아들은 국가의 강력한 행정력 아래에서 ‘국민’으로 강제적으로 호명되는 폭력적 과정에 봉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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