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자: 신필식
- 제목: 한국 해외입양과 친생모 모성, 1966~1992
- 유형: 박사학위 논문
- 발행연도: 2020
- 발행기관: 서울대학교 대학원, 여성학협동과정
■ 초록 본 논문은 해외입양을 둘러싼 사회적 변화와 친생모의 입양결정에 초점을 맞추어 해외입양 증감을 설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한국은 한국전쟁 이후 현재까지 17만명에 가까운 자국 출생 아동을 해외로 입양시킨 대표적 해외입양 송출국이다. 본 논문은 한국사회 모성의 제도적 현실과 친생모 행위성이라는 관점에서 왜 그렇게 많은 한국 친생모들이 자신이 낳은 아이를 입양보내야 했으며, 그 입양은 왜 하필 국경을 넘어 해외의 가족을 통해 이루어졌는지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 해외입양에 관한 우리 사회의 주된 설명 방식은 크게, 버려지는 아이가 너무 많아 해외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는 유기 담론(遺棄 談論)과 국가가 자국민 아이들을 돌보지 않고 해외로 보내버린 것이라는 무책임 국가론(無責任 國家論)으로 나뉜다. 그러나 두 방식의 설명 모두에서 왜곡 혹은 간과되어 온 존재가 바로 해외로 입양될 아이를 출산한 여성, 곧 해외입양 친생모이다. 지금껏 한국 사회에서 해외입양 친생모는 아이를 낳아 비정하게 버렸거나 어쩔 수 없이 포기했다는 한정된 이미지 속에서 머물러왔으며 대부분 미혼모, 특히 10대의 어린 미혼모로 제한적으로 이해되어 왔다.
과연 그 많은 여성들은 누구였는지 그들에게 자녀를 해외로 입양 보낸다는 결정은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해 답하기 위해 본 연구는 한국사회 모성의 제도적 현실과 친생모의 행위성에 주목한다. 본 논문의 연구 시기는 1966년부터 1992년까지다. 연구에서는 다시 이 시기를 전쟁고아와 혼혈아동에 대한 해외입양이 거의 끝난 상태에서 새롭게 해외입양의 증가가 시작되고 지속된 1966년부터 1979년까지, 잠시 감소세였던 해외입양이 급증했던 1980년부터 1987년까지, 내내 높이 유지되던 해외입양이 짧은 기간 동안 급감을 통해 이후의 평탄한 감소세로 이어지는 1988년부터 1992년까지의 세 시기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기존의 많은 한국 친생모 연구들이 직면했듯이, 이 논문에서 탐구할 기간의 친생모들의 경험과 선택을 읽어낼 수 있는 방법과 자료는 여전히 극히 제한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 연구는 친생모들이 처했던 조건과 그들에게 주어졌던 행위적 선택지들이 어떻게 바뀌어 왔는지 살피고, 해외입양의 변화 추세를 친생모 삶의 맥락 및 모성의 변화와 연관지어 보는 전략을 택하였다.
연구를 통해 먼저 각 시기별로 해외입양 및 친생모 모성 관련 제도를 검토한 다음, 언론보도 내용을 활용하여 친생모 및 해외입양을 둘러싼 담론과 사회문화적 재현을 살펴보았다. 이어서 입양상담을 받은 친생모의 통계적 특성을 살펴보고, 이를 다시 해외입양인 수기집, 입양상담 사례집, 심층면접 연구자료 등에 나타난 구체적 해외입양을 보낸 친생모 사례를 통해 비교해 살피고자 했다. 다음으로는 해외입양 관련 통계, 요보호아동 관련 통계, 입양상담을 받은 친생모 통계 등을 수집하고 각 시기별 해외입양 아동수의 증감을 상세하게 읽어내고 이것을 앞서 살핀 친생모 관련 지식들과 견주어 보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를 통해 해외입양을 보낸 친생모들의 삶의 맥락이 어떻게 구성되었을지, 그녀들의 입양결정은 어떻게 내려지고 실행되었을지 그 의미를 가늠해보았으며, 제도적 맥락 속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모성의 성격을 분석함으로써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 친생모들의 삶의 조건은 어떻게 변화해 갔으며, 이는 친생모의 입양결정을 어떻게 변화시켜 갔는지를 기록하고 분석하였다.
연구를 통해 분석한 해외입양 증감과 친생모의 입양결정의 관계가 형성, 변화된 과정은 다음과 같다. 먼저 1966년부터 1979년 시기에는 국내 아동보호 체계의 불안정성이 지속되는 가운데 아동복리시설의 감소와 해외입양기관의 입양상담조직의 확대가 이루어졌다. 또한 불평등한 모성 법제 속에서도 친생모 보호정책이 도입되어 갔지만, 친생모가 직면한 모순에 대한 인식과 대응이 지체된 가운데 입양을 전제로 한 보호가 대부분이었다. 한편 사회문화적 재현 속에서 해외입양 친생모에 대한 사회적 비난이 늘어난 반면, 해외입양에 대한 긍정적 측면이 부각되면서 해외입양에 대한 기대는 확대되었다. 이러한 조건 속에서 이 시기부터는 이전까지 주류를 이루던 혼혈자녀를 둔 친생모뿐만 아니라 비혼혈(한국계) 자녀를 둔 친생모들도 자신이 자녀를 적절히 보호・양육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 경우 점차 해외입양을 더 많이 고려하게 되었다.
한편, 해외입양이 점차 증가하자 정부가 이를 억제하기 위해 해외입양기관을 통한 국내입양 확대정책을 추진했지만, 해외입양 억제를 모색했던 정부의 일련의 감축정책은 친생모 증가의 실질적 원인과 맥락을 파악하거나 이에 대응하지 못한 한계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시기의 해외입양 감축정책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해외입양기관을 찾아 입양을 의뢰하는 친생모를 줄이지 못해서 오히려 해외입양 증가로 이어지게 되었다.
다음으로 1980년부터 1987년 시기에는 근대적 정상가족 이데올로기가 강화되고, 정부의 해외입양 정책 방향이 자율화로 전환된 가운데 친생모에 대한 양육 지원이 부재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또한 미혼모 모성 지위는 약화되면서 미혼모의 비모성화가 진행된 반면 한국 아동을 입양한 해외입양가정에 대해서는 정상가족의 전형으로서 선망이 더욱 강화되었다. 이러한 변화 속에 미혼여성이 임신을 하게 될 경우나 기혼여성이 자녀 양육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경우 해외입양 이외의 지원과 보호는 여전히 주어지지 않았다. 그로 인해 자신이 양육하는 대신 해외입양기관을 통해 입양을 상담・의뢰하는 친생모의 수는 더욱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에 정부가 추진했던 아동복지 개선과 아동복지 입법에도 불구하고, 해외입양 자율화 이후 해외입양기관들이 전국적으로 상담조직을 확장해 경쟁적 입양 홍보와 입양 권유, 출산기관(산부인과와 조산소)을 통한 입양아동 확보 경쟁에 나서면서, 이들 해외입양기관을 통해 입양상담을 받은 친생모와 기・미아 아동수가 급증했고 이는 곧 해외입양 아동수 증가로 이어지게 된다. 그로 인해 해외입양을 개방하여도 해외입양 아동수는 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였던 정부의 기대와는 달리 친생모의 입양결정은 급증하였으며 결과적으로 해외입양은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하게 되었다.
그 다음 1988년부터 1992년 시기에는 해외입양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국내외에서 확대되자 정부가 해외입양 자율화에서 해외입양 중단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였다. 또한 가족법 내 모(母)의 법제적 지위가 개선되고 영유아보육법이 제정되는 등 모권(母權) 관련 제도가 개선되었으며 기혼과 미혼의 친생모의 자녀양육 지원정책이 도입되었다. 양육미혼모에 대한 지원 필요성이 대두되는 등 미혼모의 모성에 대한 인식이 변화한 반면 해외입양에 대한 이상화된 인식에는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였으며, 서구 입양국에서 해외입양인으로 살아가는 삶에 대한 한국사회의 기대와 동경이 줄어들게 되면서 해외입양에 대한 친생모의 필요와 선호가 줄어들게 되었다.
이 시기의 해외입양이 급격히 감소한 것은 우선 당시의 해외입양 정책의 선회와 해외입양에 대한 국내 인식이 급변하는 상황 속에 친생모들이 해외입양을 통해 기대하고 실제 입양상담을 의뢰할 동기와 실질적 통로가 줄어들었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빈곤가정, 모자가정, 미혼가정의 어머니들이 자녀를 양육하기로 선택하고 이를 지속하는데 필요한 양육 지원이 도입되고, 친권의 제도적 인정이 가능해지는 등 이전에 비해 입양 이외의 선택지가 늘어나면서 해외입양 친생모의 수가 빠르게 감소한 것도 해외입양을 감소시킨 요인이었다. 그러나 기혼여성의 양육 및 임신중절 선택기회에 비해 미혼여성, 특히 20대 중반 이하의 청소년 미혼모의 양육 선택권과 피임, 임신중절과 관련된 재생산권의 개선은 여전히 이뤄지지 못했다. 당시의 모권(母權) 관련 제도의 개선과 친생모 자녀양육 지원의 도입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있던 청소년 미혼모는 입양 외의 선택이 여전히 제한된 결과 해외입양 친생모의 저연령 미혼생모화가 더욱 진행되어 갔다.
해외입양에 대한 여성주의 접근을 통하여 한국 해외입양 연구이자 친생모 모성을 살핀 본 연구의 의의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 연구가 다루는 시기의 한국 사회에서 해외입양과 한국의 모성 그리고 친생모 구성의 변화 간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고, 각 시기별 친생모 모성과 친생모 입양결정 양상의 변동 추이가 한국 해외입양의 증감 추이와 성격 변화를 상당 부분 설명해 줄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둘째, 기존의 해외입양 설명 방식인 유기 담론과 무책임 국가론에서 비가시화 되거나 비모성적 존재로 인식되었던 것과 달리 해외입양 친생모가 해외입양 제도와 한국 모성의 제도적 변화에 따라 해외입양을 결정한 행위자(agency)이자 모성적 주체였음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이 해외입양 친생모를 모성적 행위자로, 입양결정을 모성적 실천으로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함으로서 기존의 가부장적 모성 이데올로기 관점에서 구성된 해외입양 친생모 인식과 담론을 여성주의 모성 관점에서 재구성해내었다. 셋째, 해외입양 아동의 국내 보호절차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기록의 공백을 극복하고, 해외입양 아동이 한국 사회와 가정, 친생모로부터 해외로 입양되기까지의 과정과 해외입양 당시의 사회적 맥락을 파악하고 설명하였다. 넷째, 해외입양과 한국 모성의 관계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 해외입양 친생모와 그들의 모성경험이 갖는 여성주의적 함의를 기록・분석해 냄으로써, 국가간입양의 형성과 확대에 주요한 당사국으로 한국이 어떠한 역사사회적 과정을 통해 해외입양을 확대하고 또 감소시켜갔는지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