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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가족에 대한 우생학적 오해: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2024-12-04 06:52
작성자 Level 10

한겨레 게재 칼럼

일자: 2024.12.2


<왜냐면> 정우성 논란 계기로 ‘아버지의 역할’ 새롭게 논의해야

정우성 배우의 ‘혼인 외 출생자’로 논쟁이 뜨겁다. “새로운 가정의 형태를 인정해야 한다”에서부터 “그게 무슨 가족이냐, 아이들은 부모와 함께 살아야 한다”까지. 한 야당 의원은 “아직 대한민국은 유교적 전통이란 것이 있는데 갑자기 바뀌기는 쉽지 않다”고도 했다. ‘전통적 결혼·가족 존중’과 ‘새로운 형태의 결혼·가족으로의 전환’이 팽팽하게 맞서는 모습이다. 그런데 이 대립된 입장에서 말하는 전통, 결혼, 가족에 대한 오해가 논란을 더욱 수렁으로 빠뜨리는 형국이다.

‘가족’이라 할 때 우리가 떠올리는, 법적으로 결혼한 남녀가 출산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모습은 상당히 근대적 상상이다. 유교 사회에서는 한명의 아버지와 여러명의 어머니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을 일가로 이해했다. 조선시대 사대부는 주희의 ‘가례’를 생활 예법의 근간으로 삼았다. 적모(아버지의 정실)를 비롯해 서모(아들을 낳은 아버지의 첩), 출모(쫓겨난 어머니) 등 팔모(여덟 가지 어머니)에 대해 사후 상복을 입는 기간을 정해 놓고 그들에 대한 예를 지켰다. 물론 자식 간 서열 차이는 있었지만 혼인하지 않고 자식을 기르는 것이 ‘유교적 제도와 전통’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한다면 이는 역사적 사실과 사뭇 다르다.

혼외 성을 금기시하고 ‘사생아’ 출생을 억압한 것은 20세기 초다. 당시 근면하고 건전한 성 윤리를 지키는 부르주아지 가정이 시대적 이상으로 떠올랐다. 19세기 우생주의자들은 20세기 들어 결혼과 가족 옹호론자로 변한다.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인종 개량을 위해 혼외 성을 금기시하고, 장애인의 단종을 주장했다. 사생아, 혼외 출산한 어머니, 장애인 등은 점점 가족 정의에서 배제되어 갔다. 이른바 근대 ‘정상가족’이 출연한 것이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 우생학의 본고장 영국에서는 ‘모범가정 전시회’가 열리고, ‘결혼상담협의회’나 ‘결혼지도위원회’ 등이 속속 설립된다. 20세기 초 새롭게 나타난 이 가족 형태를 우리는 여전히 가장 도덕적이고 행복하고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가족’에 대한 우생학적 오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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