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진화는 계속 된다_ 성, 사랑, 가족 | 4화 쇼핑백 속에 넣어 아기 유기해도 보호출산제 도입 않는 나라는?, 7월 19일 보호출산제 시행 앞두고 다시 점검할 사항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6월은 수원 냉장고 영아 시신 사건으로 세간이 떠들썩했다. 출산기록은 있으나 출생등록이 안 된 아기들의 행방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사건이었다. 세 명의 아이를 키우고 있던 고아무개씨가 2018년과 2019년 출산한 두 명의 아기를 살해 후 집 안 냉장고에 보관하고 있다가 5년 만에 발각된 것이다. 참담함과 슬픔 그리고 깊은 충격을 안겨준 이 사건은 우리 사회에 세 가지 변화를 가져왔다. 첫째, 영아 유기와 영아 살해의 경우에도 일반유기죄와 일반살해죄를 적용해 무거운 처벌을 내릴 수 있게 되었다. 둘째, 출생 미등록을 방지하기 위해 의료기관에 종사하는 의료인이 아기 출생 정보를 관련 기관에 통보하도록 하는 출생통보제가 도입되었다. 셋째, 출산 사실이 밝혀지기를 원하지 않는 임산부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익명으로 출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 (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가 도입되었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는 모두 올해 7월 19일 시행을 앞두고 있다. 고씨 사건과 세 가지 변화, 그 인과 관계 수원의 고씨 사건이 가져온 세 가지 변화는 과연 영아 살해 방지와 어떤 인과 관계가 있을까? 첫째, 그간 영아 유기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영아 살해는 10년 이하의 징역으로 일반 유기나 살해보다 가볍게 처벌했다. 그간 '솜방망이 처벌'이라고 지탄받던 영아유기죄와 영아살해죄를 폐기하고 일반 유기죄와 살해죄를 적용해 무겁게 처벌하기로 한 것은 타당해 보인다. 둘째 지금까지 신생아 출생은 부모의 자율적 신고로 이루어졌기에 고씨의 경우처럼 출생신고 전 영아를 살해하면 이번처럼 미등록 아기에 대한 조사가 없는 한 영구히 발각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의료기관에서 출생 사실을 통보하도록 출생통보제가 도입된 것 역시 영아 살해를 방지하는 것과 인과 관계가 있어 보인다. 셋째, 고씨는 "경제적 이유"로 아기를 살해했다고 증언했다. 그렇다면 빈곤 가정 아동의 양육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이 당연히 뒤따라야 했다. 하지만 국회는 익명 보호출산제를 통과시키고 예산 42억을 배정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위기임산부에게 신분을 감추고 아기를 낳아라? 아무래도 인과 관계가 없어 보인다. 영아 유기와 살해를 유발하는 광범위한 스펙트럼 지난 3월 보건복지부는 "유관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2024년 7월로 예정된 보호출산제 시행을 차질 없이 준비 중"이라는 보도자료를 냈다. 그리고 "7월부터 위기임산부 상담전화(핫라인)를 전국 12개 소에 개설하여 어디서나 상담할 수 있도록 했으며, 미혼모 등 한부모가족 지원을 강화하여 위기임산부가 출산 이후 아이를 직접 양육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내용 살펴보면, "청소년 한부모 등 한부모가족에 대한 아이돌봄서비스 이용요금의 90%를 지원하고(중위 150% 이하), 24세 이하 청소년 한부모 가정의 0-1세 영아 대상 아동양육비를 월 35만 원에서 40만 원으로 상향(중위 65% 이하)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원이 과연 광범위한 이유로 일어나는 영아 살해를 막을 수 있을까? 시간을 거꾸로 돌려 이 제도를 시행했다고 하더라도 고씨는 여전히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고씨는 한부모 가정도, 만 24세 이하의 청소년 한부모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아 유기나 살해의 원인은 그 스펙트럼이 광범위하다. 신분노출이나 출산 사실을 드러내기 꺼리는 산모의 경우 외에도 고씨처럼 경제적 어려움이나 장애아 출산, 심리적 장애, 임신 거부증과 같은 원인으로 출산 때까지 임신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보호출산제는 이 광범위한 원인에 대응하지 못한다. 그리고 임신 순간부터 시작되는 위기에 대응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7월 시행을 앞둔 보호출산제 준비는 매우 "차질"이 있어 보인다. 고아와 입양아동의 양산 결국 위기임산부는 양육이 아닌 익명 출산과 아기 포기라는 선택으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포기한 아기는 입양대상 아동이 되고, 입양기관은 더 많은 입양대상 아동을 확보하게 될 것이다. 과거 1970년대 1980년대 미혼모의 아기, 빈곤 가정의 아기, 거리의 미아까지 모두 고아 호적을 만들어 해외 입양을 보내며 막대한 수익을 창출하며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던 입양의 어두운 역사가 다시 반복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보호출산제는 누구의 이익에 봉사할까? 국가의 보호를 받으며 자기가 낳은 아기를 유기하는 어머니의 이익인가? 출생 서사가 지워지고, 부모가 누구인지 알권리를 부정당하고 제한된 출생 정보만을 가지고 평생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살아야 할 아동의 이익인가? 아니면 수수료를 받고 국내외 입양 대기 부모에게 아기를 보내는 입양 기관의 이익인가? 빈곤 여성과 가족에 대한 복지 예산을 절감하게 되는 국가의 이익인가? ▲ 이제라도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와 빈곤 가정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 Morguefile 아동의 알권리, 원가족에 의해 양육될 권리를 지키고 있는 영국
산모의 익명 출산을 허용하는 프랑스, 독일, 스위스 등은 우리나라에서 보호출산제 도입의 정당성을 주장할 때 자주 등장하는 국가였다. 하지만 우리가 한 번도 언급하지 않은 나라가 있다. 이 나라에서는 산모의 익명 출산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미국처럼 아동을 안전한 곳에 유기할 수 있는 '안전한 피난처 법(Safe Haven Law)'도 없다. 바로 영국이다. 영국은 1861년 개인범죄법 27조에 2세 미만 아기 유기는 형사 범죄로서 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사실을 명시한 후 이후 아기를 유기할 수 있는 어떤 예외 사항도 두지 않았다. 위기에 처한 임산부나 빈곤 가정에 상담을 제공하고 적절한 지원을 하는 쪽으로 현재까지 법과 제도가 정비되어 왔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수는 매우 적지만 여전히 유기 아동은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영국 보수당은 2016년과 2017년 각각 두 번에 거쳐 미국과 같이 '안전한 피난처 법'을 도입하자며 국회 사이트에 청원을 올렸다. 1만 명이 되어야 논의를 시작할 수 있는데 2016년에는 404명이, 2017년에는 불과 22명이 서명했다. 6개월간 상정되었던 청원은 이로써 폐기됐다. 그런데 지난 2024년 1월 탯줄을 단 채 쇼핑백에 넣어져 버려진 신생아 엘사의 사건은 영국 사회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왜냐하면 2017년, 2019년에 각각 유기된 두 명의 신생아와 엘사는 유전자 검사 결과 형제자매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토인 오두말라(Toyin Odumala)라는 20대 여성은 온라인 서명 운동을 벌였다. 그 자신이 버려진 아기로 발견되어 성장하였기에 이 캠페인은 더 주목을 받았다.
“저는 2001년 7월 26일 태어난 후 바로 유기되었습니다. 개를 산책시키던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4개월 보호소에 있다가 입양되어 현재까지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저는 운이 좋은 경우였죠. … 미국에는 베이비 박스가 있습니다. 아기를 키울 수 없는 여성은 익명으로 지정된 장소에 아기를 유기할 수 있습니다. 박스는 냉난방이 되고 알람이 울려 아기는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습니다. 영국에도 이런 박스가 필요합니다. … 어떤 아이도 태어나서 길거리나 위험한 곳에 버려져서는 안 됩니다. '안전한 피난처 법'을 도입하기 위해 서명해주세요!”
서명 운동을 시작한 지 세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4만 1000명가량이 서명했다. 국회 청원보다는 많은 수가 호응을 한 편이다. 영아 유기와 살해에 대응하는 두 가지 방법 하지만 이에 대해 세이브 더 칠드런 관계자는 "도전하는 멋진 청년이지만 빈곤이나 다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원가족을 더 지원하여 버려지는 아기가 없도록 하여 모든 아동이 최선의 상태에서 삶을 출발하도록 돕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논평을 냈다. 보건사회복지부(DHSC) 대변인 역시 "임신의 모든 과정을 지원하는 정책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 중 하나"라고 하며 "영국 전역의 신생아 돌봄을 개선하는 데 1억 6500만 파운드 (4월부터 1억 8600만 파운드로 증액)를 투자하고 있다. 또한 출산 전후 모든 산모가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출산 돌봄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 680만 파운드를 투입하고 있다"고 밝혔다. 영국은 1998년에서 2005년 사이 매해 16명의 아동 유기가 발생했다. 반면 '안전한 피난처' 법을 시행하는 미국은 1999년부터 2021년까지 4,505명의 아기가 베이비 박스에 유기되었다. 영국의 아동 유기율이 매우 낮은 것은 아동복지 관계자나 정부의 복지 정책 담당자들이 유엔이 규정한 아동의 기본권, 즉 부모를 알권리와 부모에 의해 우선 양육받을 권리에 대한 흔들림없는 신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동 유기에 대처하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 대표적으로 영국의 방식과 미국의 방식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올해 7월 19일부터 보호출산제를 시행한다는 점에서 미국이 간 길을 택한 것 같다. 이 길을 돌이킬 수 없다면 적어도 미국에서 보듯 수천 명의 아기가 합법적으로 유기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이제라도 "경제적, 심리적, 신체적 어려움을 겪는 임산부"(위기 임신 및 보호출산 지원과 아동 보호에 관한 특별법 제1조)와 빈곤 가정에 대한 실질적 지원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이 컬럼은 2024.06.28 오마이뉴스에 게재된 기사를 편집한 것입니다. 쇼핑백 속에 넣어 아기 유기해도 보호출산제 도입 않는 나라는? - 오마이뉴스 (ohmy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