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여성논단] 게재 칼럼일자: 2025.3.27
[여성논단] 서류 없으면 피해도 없다?… 진실화해위의 모순과 위선
1964년부터 1999년까지 해외 11개국으로 입양 보내진 입양인 중 367명이 과거 해외입양 과정에서 자행된 불법적 관행에 대한 조사를 신청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화해위원회)는 우선 98명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고, 그중 피해 사례로 판명된 56명에 대한 조사 결과를 지난 3월 26일 발표했다.
진실화해위원회는 해외입양 과정에서 아동의 본래 신원과 가족에 대한 정보가 소실, 왜곡, 또는 허위로 작성되었고, 해외 송출 이후에도 적절한 보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아 입양인들은 우리 헌법과 유엔 아동권리협약 등에 명시된 아동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음을 인정했다.
구체적으로는 적법한 입양 동의 부재, 허위 기아 발견 신고서 작성 등 기록의 조작, 의도적 신원 바꿔치기, 양부모 자격 부실 심사 등의 행위가 제시되었다. 또한 입양 수령국인 서구 유럽 국가들 역시 입양 아동 확보를 위해 한국 입양기관에 기부금을 지원한 사실도 드러났다.
“이제 덴마크인들은 다시 한 번 한국에서 어린이를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 온 건강한 아이의 가격은 약 10,000DKK인 반면, 장애 아동은 3,600DKK로 구입할 수 있습니다. 방글라데시, 중앙아메리카, 인도에서 입양된 아이들도 같은 비용이 듭니다.” (덴마크 일간지 EKSTRA BLADET 1975.11.26.)
▲1975년 11월 26일자 덴마크 일간지 EKSTRA BLADET. 한국에서 온 건강한 아이의 가격을 약 10,000DKK, 장애아동은 3,600DKK로 구입할 수 있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불법과 부실 입양에 대한 입양기관, 국가 그리고 국가 간 책임을 광범위하게 인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실화해위원회는 조사 대상 98명 중 56명을 제외한 42명은 서류 미비로 사실상 피해자가 아니라는 결정을 내렸다.
수십 년 동안 입양기관의 불법 자행, 정부의 묵인과 서구 사회의 공조가 없었으면 일어날 수 없었음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증명할 충분한 서류가 없다는 이유로 42명에 대해 피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내린 것은 이들에 대한 2차 가해이다.
부실한 제도와 관리로 인해 원가족과 분리되고, 태어난 국가를 떠나고, 자신의 출생 정보조차 알지 못하는 상황에 놓인 것 자체가 피해다. 즉, 입양인 존재 자체가 증거이다.
따라서 이번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발표는 모순과 위선으로 가득 찼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지난 2년간 투입한 자신들의 노력에 스스로 흠집을 냈다.
▲비행기 좌석에 세로로 눕혀져 해외로 입양보내진 아기들. ⓒ진실화해위원회 제공
조사 결과 발표장에서 입양인 김유리씨는 입양인의 권리 회복을 위한 보다 강력한 권고안을 요청하며 무릎을 꿇고 “다시 검토해주세요”를 여러 번 말하며 눈물로 읍소했다. 수많은 해외 언론에 이 장면은 “입양인을 위로하는 박 위원장”으로 캡션이 나갔지만, 정확히 말하면 당황한 박 위원장이 입양인을 진정시키는 모습이다.
42명의 입양인이 서류 미비로 피해자임을 인정받지 못했음은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가 일보 후퇴했음을 의미한다. 지금이라도 이들의 피해 사실을 인정하고, 입양인을 위한 정의로운 결정을 내리며 진정한 진실과 화해를 위해 나아가길 요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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