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여성논단] 게재 칼럼일자: 2025.2.20
[여성논단] 아이들의 역사를 지우는 나라
18세기 산업혁명 시기 런던의 빈민 수는 급속도로 늘었다. 교회 계단, 쓰레기 더미 등에 한 해 약 1천 명의 아이들이 버려졌다. 이를 목격한 자선사업가 토마스 코람은 기아보육원을 설립했다. 빈곤에 시달린 어머니들이 아이들을 맡겼다. 그리고 다시 찾을 날을 기약하며 레이스 단 모자며 종이 하트 등을 증표로 남겼다. 안타깝게도 다시 아기를 찾은 엄마는 극소수였다. 1954년 문을 닫은 기아보육원은 토마스 코람재단으로 바뀌어 빈곤가정 아동 지원사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2004년에는 기아박물관(Foundling Museum)을 오픈했다.
이곳은 기아의 삶을 기록하고 기억하는 곳이다. 과거 자료와 사진을 전시하고 그곳에 수용되었던 당사자의 육성도 들을 수 있다. 몇 달 전 여행하며 들러보았는데 작지만 숙연해지는 곳이었다. 오래전 엄마들이 남긴 증표도 잘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보육원이 소지한 자료를 토대로 이들의 후손들이 조상을 찾는 일도 돕고 있었다. 기록이 잘 보존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부/모가 누군이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 후손에게 전해주는 일의 중요성을 박물관이 잘 인지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얼마 전 '사라진 입양 기록: 나를 지운 나라'(MBC PD수첩 1월 14일 방영)에도 나왔듯 우리의 입양 기록 보관은 총체적 부실 상태에 있다. 기록 보관 부실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전혀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어떤 기관에서는 "입양인들이 30, 40년 전 기록을 보고 싶어 할 수 있으니 기록을 폐기하라"고 지시했다니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경제적으로 발전했는데 왜 여전히 해외 입양을 보내는지 비판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핏줄을 중시하는 한국 문화' 때문이라는 핑계를 둘러댔다. 이젠 묻고 싶다. "핏줄을 중시하는데 왜 입양인의 친생부모 정보를 이렇게 함부로 다루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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