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명: "미혼모의 유아 암시장 성업, 미상원 법적 문제로 청문회 열어"
- 부제: 공급 달려 서독서 임부 공수해 오기도, 마이에미선 버젓이 '신생아 농장' 경영
- 게재지: 경향신문
- 게재일시: 1975년 5월 17일
- 내용 요약 :
5년 전만 해도 미혼모 중 80%가 낙인으로 인해 아기를 포기했지만 지금은 미혼모를 별로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아 미혼모 80%가 아기를 기르기를 희망한다고 한다. 이로 인해 건강한 백인 아이들이 부족하게 되자 유아 시작이 생기고 이 시장이 국제화되어 가고 있다. 어떤 변호사는 서독의 임산부를 미국으로 실어왔고 프랑스와 남미에까지 무대를 확장시킬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마이애미에서는 수명의 변호사가 '신생아 농장'을 운영하는 것으로 밝혀졌는데 여기에는 10대가 포함된 임산부가 출산할 때까지 6-7명이 한 집에 모여 생활하도록 되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70년대까지 서구 사회의 미혼 임신과 출산에 대한 차별과 낙인은 심했다. 결과적으로 수십 만 명의 백인 미혼모에게서 태어난 아기들이 기혼 부부 가정으로 입양 보내졌다. 이 시기를 ‘아기 퍼가기 시대’라고 부른다 (참조: 캐런 윌슨-부터바우 『아기 퍼가기 시대: 미국의 미혼모, 신생아 입양, 강요된 선택』 ). 입양 시장에서의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 문제는 이미 1950년대부터 있어 미국 사회는 점차 다인종 국제 입양으로 그 관심을 옮겨가고 있었는데 (참조: Julie Berebitsky, 2000, Like Our Very Own: Adoption and the Chnaging Culture of Motherhood, 1851-1950) 1970년대에 들어서 제2의 페미니즘 물결 영향으로 미혼모가 더는 아기를 포기하지 않게 되자 아동 거래 암시장이 형성되고 다른 한편으로는 국제입양이 증가하는 특징을 보인다.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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