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명: "늘어난 10대 미혼모"
- 게재지: 조선일보
- 게재일시: 1974년 1월 13일
- 내용 요약:
우리나라에도 10대 미혼모가 늘며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특히 10대 여성들을 집단 고용하는 공업단지가 생기면서 더욱 두드러져 보사부에서도 연차적으로 미혼모에 대한 보호시설을 증설할 방침이다. 현재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곳은 14개 공사립 아동상담소, 10개 기아일시보호소, 42개 영아원 (4세 미만 어린이 수용)에서도 미혼모의 사생아를 맡아 양부모를 찾아 결연시켜주고 있다. 또한 구세군여자관, 대한사회복지회 (회장 탁연택 52세) 은혜관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일부 종교단체와 사회복지법인도 미혼모 출산과 직업보도, 생계비 보조 등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들 단체는 15-35명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무료분만을 알선하여, 최고 1년 6개월까지 수용하고, 자활책으로 각종 강습소의 강습비를 보조해주고 있다. 하지만 점차 10대 미혼모 증가 추세를 감안할 때 수용시설은 너무 빈약하다. 대한사회복지회 탁연택 회장은 10대 미혼모는 1) 사회환경 변화에 적응할 능력이 없는 소녀들이 갑자기 부모의 가시를 벗어나게 되는 경우 2) 가정교육, 애정의 결여와 감시의 소홀로 성에 대한 관심이 이상 발달하는 경우 3) 사춘기 소녀들이 지도없이 집단생활하는 경우 등으로 보고, 공장 10대 공원들에게 건전한 성교육을 시켜 탈선으로 막아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보사부는 미혼모 증가가 사회문제로 대두될 것으로 보고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와 각도에 출산 시설과 직업보도를 겸한 보호시설을 연차적으로 1개소씩 설치해 나갈 방침이다. 1970년대 미혼모는 어리고 (10대), 배우지 못했으며 (공장지대), 성적 호기심에 탈선하는 소녀들이란 담론이 적극적으로 생산되었다. 낙인과 예방 대상으로서 미혼모를 규정하는 담론은 주로 입양기관에 의해 생산 유포되었다. 1970년대 초반에는 한국기독교양자회가, 중반 이후부터는 정부 인가 4대 해외입양 기관이 이러한 담론의 생산자로 미디어에 주로 등장한다. 그리고 학자는 이를 정당화하는 연구결과를 발표하고, 정부는 미혼모 보호시설을 증설하고 지원하는 방향으로 미혼모와 미혼모 아기에 대한 복지시스템을 구축해 나갔다. 결과적으로 1970년대 전체 입양 아동 중 미혼모 아기는 1960년대 1,163명에서 1970년대 9,075명으로 급증했다. 통계 참조 (권희정 2019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의 역사』, 29쪽) 기사보기 #차별, #낙인, 1970년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