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명: "그늘서 땀흘리는 이땅의 이방인들 (7) 미혼모 상담역 바이마 씨"
- 게재지: 동아일보
- 게재일시: 1972년 11월 29일
- 내용 요약:
캐나다 태생 사회복지사인 시드니 바이마 씨(31)는 3년 전 그가 속한 기독교 개혁교회에서 한국에 보낼 미혼모 상담 전문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에 오게 되었다.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있는 한국기독교양자회 책임자로 있는 시드니 바이마 씨(31세)는 지난 2년 반동안 그가 배운 사회복지 원칙과 지식을 동원하여 미혼모를 직접 만나 상담할 수 있는 한국인 직원을 훈련했다. "아기를 무턱대고 낳아서 길에 내다버리기 보다 다른 집에 양자로 주는 것이 그 아기에게 백 배 더 낫다고 봅니다. 이별하지 않을 수 없을 때 이별을 잘 하는 것이 미혼모나 아기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입니다." (시드니 바이마 씨) 한국기독교양자회는 되도록 미혼모가 임신 중 상담을 시작하도록 권하고, 건강하게 아기를 낳게 하고 기를 수 없는 경우 딴 가정에 양자로 주고 있다. "이별을 잘 하도록 설득하는 괴로운 직업"을 가진 바이마 씨는 미혼모가 아기와 상관없이 미래를 위해 살도록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하고 있다. . 1970년 전후는 한국이 미혼모 아기 입양을 위해 시스템을 갖추어 나가던 시기로 기록된다. 미국 세계기독교 개혁선교회 소속 엘바이너 스폴스트라 씨가 1971년 한국기독교양자회를 떠나기 전인 1970년 경 캐나다 세계기독교 개혁선교회 소속 시드니 바이마 씨도 한국에 왔다. 그리고 그는 미혼모 아기의 국내입양을 위한 상담사 훈련 및 미혼모와 아기 입양을 중심으로 한 사회복지 사업을 벌였다. 결과적으로 1960년대 국내 입양 아동 중 미혼모 자녀는 1,163명이었으나, 1970년대는 9,075명으로 급증했다. (통계 인용 권희정 『미혼모의 탄생: 추방된 어머니의 역사』 2019: 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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