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말

안녕하세요!

한국전쟁 이후 20만 명 이상의 아기가 해외로 입양되었습니다. 국내 입양과 비공개 입양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입양 초기에는 대부분 혼혈 아동이 해외 입양길에 올랐습니다. 심지어 어머니에게 키워지고 있던 혼혈 아동도 혼혈이라는 이유로 해외로 보내졌습니다. 

이후 한국이 경제성장을 하기 시작한 1970년대에 접어들면 근대 핵가족의 가치가 강화되고 정상가족이 이상화되며 미혼모에 대한 낙인이 심해졌습니다. 이제 입양대상은 혼혈아동에서 미혼모의 아기로 바뀌었습니다. 또한 비싼 입양 수수료로 인해 아기 입양이 큰 수익을 창출하자 1970년대와 1980년대는 미혼모의 아기, 빈곤 가정의 아기, 거리의 미아는 ‘고아’가 되어 원가족과 분리되어 국내외 입양을 통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계기로 한국은 서구의 주목을 받게 되었고, 이같은 입양실태가 알려지면서 “아기를 파는 나라”라는 오명을 받게 됩니다. 이후 입양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수의 아동이 원가족을 알고 원가족에게 양육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국내외로 입양 보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입양되는 아동의 거의 100%가 미혼모의 자녀입니다.

2008년 미국의 입양부인 리차드 보아스 박사에 의해 미혼모 권익운동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었습니다. 2009년에는 미혼모 당사자 운동도 시작되었습니다. 이러한 운동으로 미혼모에 대한 낙인은 많이 완화되었지만 여전히 미혼모는 입양과 양육을 저울질 해야 하는 환경에 있습니다. 지원 체계가 빈약한 미혼모는 아기를 선택하면 빈곤한 삶을, 입양을 선택하면 상실과 죄책감을 감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게다가 2024년 7월 19일부터 위기임산부의 익명 출산을 지원하고 합법적으로 아동을 유기할 수 있는 보호출산제가 시행되었습니다. 위기 임산부에 대한 임신에서부터 양육까지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 마련없이 시행된 보호출산제이기에 더 많은 아기의 유기가 우려되는 시점입니다.  

이것이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가 시작된 배경입니다.  우선 미혼모에 대한 모든 것을 기억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미혼모를 복지 대상으로만 보는 것에서 한 걸음 나아가 미혼모를 학술적이고 역사적이고 인권적 관점에서 이해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지식과 담론을 생산하고 여성과 아동의 인권 신장을 위한 권익옹호 활동을 하고자 합니다.

우리 연구소는 미혼모를 역사적 개념/사건으로 연구하고, ‘미혼모’라는 개념이 어떻게 구성되고, 변주되고 또 정치화 되는지 알리고비혼/빈곤 여성의 재생산 권리빈곤/비혼 어머니와 그 자녀가 분리되지 않을 권리, 불가피하게 분리되지 않을 수 없는 경우에는 원가족을 알 권리를 옹호하는 역할을 해 나가겠습니다. 

많은 분들의 관심과 지지 그리고 참여는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좀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해주세요.

권희정

미혼모 아카이빙과 권익옹호 연구소장